21일간의 쫄깃함, 대학생 열정 모험가 신지휴의 2016 지로 디 이탈리아 완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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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더바이크
댓글 0건 조회 495회 작성일 16-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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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간의 쫄깃함




대학생 열정 모험가 신지휴의 2016 지로 디 이탈리아 완주기 



자신을 열정 모험가라고 소개하며 그에 걸맞는 활동을 해 나가고 있는 신지휴(26, 전북대 3학년) 씨가 지난 5월 6일부터 28일까지 23일간 열렸던 2016 지로 디 이탈리아를 완주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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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등정, 일본 무전여행, 풀코스 마라톤 11회 완주 등 다방면의 활동 경력이 있는 대학생 신지휴 씨는 작년 2015 투르 드 프랑스 코스 도전에 이어 올해 또한 메이저 코스인 지로 디 이탈리아를 도전하였다.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자전거에 입문하였기에 라이딩 경력은 얼마 되지 않지만, 자신의 롤 모델인 피터 사간을 한번 쯤은 만나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으로부터 이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또한 그는 피터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3대 사이클 대회인 지로 디 이탈리아, 투르 드 프랑스, 부엘타 에스파냐를  완주해보기로 했다. 이번 완주는 알피엠스포츠와 보마코리아, 동보상사의 도움을 받아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었으며, 일반인도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어 많은이들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나는 대한민국 열정모험가 신지휴다. 15년 1월 자전거에 입문하여 그해 바로 투르 드 프랑스 코스 완주했고, 올해 2016년에는 지로 디 이탈리아 코스를 완주하고 왔다. 지로 디 이탈리아에 관한 나의 이야기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때는 16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의 자전거 롤 모델 ‘피터 사간’ 선수를 만나 인터뷰 그리고 라이딩을 함께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것은 ‘하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나의 도전으로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후 ‘피터 사간’ 선수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지로 디 이탈리아, 투르 드 프랑스, 부엘타 에스파냐 이 3대 사이클 대회를 모두 완주하면 적어도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라 마음을 먹게 되었다. 이때 필요했던 것은 체력과 경비였는데 내가 가진 것은 오로지 열정 하나뿐이었다. ‘누구나 할 수 있다’ 라는 그 가치와 자신감을 전달하고 진정성 있게 문을 두드리자 4월 한달간 알피엠스포츠의 도움을 받게 되었고, 이어 보마코리아의 고급 카본 자전거 그리고 동보상사의 도움을 받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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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도움으로 나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도전을 시작했다











[꿈을 찾아갔는데 왜 이렇게 안 풀리지?]
‘공항노숙 3일, 피터사간이 출전 하지 않음, 가민 케이블 절선, 4일간의 우중 라이딩, 낙차 2회, 안장 크랙, 기차 연착으로 150유로 소비.’ 어떤 것이 떠오르나? 이것은 모두 출국 후 5일 내에 일어난 사건이다.


나는 5월 3일 이탈리아로 출국하였고, 4일 로마 플루미치노 공항에 도착하여 가장 처음 느꼈던 감정은 설렘이었다. 하지만 그 감정은 점점 답답함으로 변해갔다. 공항에서의 3일이라는 대기시간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힘들었고, 2일차 때 피터 사간 선수가 출전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절망에 빠지게 되었다. 점점 가지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다. 이대로 나와의 약속을 저버린다면 떳떳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마로 이동하여 첫날 출발지로 이동하였다. 기차표를 끊은 뒤 이제는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고 안심하며 기차를 타려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내가 타야할 기차는 2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역 직원에게 물어보니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많은 금액을 주고 샀던 티켓이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그 때 다음 기차까지 쉬면서 전자기기를 충전하려 잭을 꺼내자, 콘센트와 가민 충전기가 박살이 나있었다.


그 후에도 일은 잘 풀리지 않았다. ‘누구나 할 수 있다’라는 가치를 더욱 더 많은 이들에게 전달하고 싶어 찾아간 이탈리아 저널리스트에서도 퇴짜 맞기를 수십 번 했고, 백팩과 자전거는 왜 이렇게 무거운지 업힐이 굉장히 힘들고, 거기에 비는 또 왜 이렇게 오는지... 스테이지 9까지 비를 맞고 달렸다. 가장 난관은 무엇보다도 매일 정해진 코스를 달리고 잠잘 곳까지 신경 쓰니 매번 시간이 부족했다.



“내 꿈을 찾아서 이 낯선 땅까지 찾아왔는데, 왜 이렇게 안 풀리지?”
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잠자기 전 여유를 가지고 생각하던 중 순간을 즐기지 못하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즐기지 못하고 대단해지려고, 멋있어지려고만 하는 내 자신을 보게 되었다.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아]
어찌 보면 지로 디 이탈리아 모험을 하는 하루하루가 대단한 기적이었다. 하지만 이는 모두 되 돌이켜 보았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그 당시에는 대단함이라는 가치보다는 ‘순간을 즐기자’라는 가치에 중점을 두었는지 모른다. 처음 로마에 도착 하고나서 피터 사간이 출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당황이란 감정이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이었지만 사실 마음 속에서는 그렇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별을 항상 멀리 있다.’
오히려 이 상황을 이런 식으로 해석해버리곤 웃어 넘어버린 것이다. 그러한 긍정적인 생각덕분이었는지 공항에서 노숙하며 만난 여행 중이였던 형, 누나과의 인연도 너무나 소중했다. 하지만 나의 큰 약점인 ‘돈’. 특히 출발지로 이동하며 날린 기차 티켓 값인 150 유로는 너무나도 아까웠다. 하지만 이탈리아에 온 지금 만큼은 그러한 걱정을 멀리하고 싶었다. 날린 티켓값을 떨치고 과감하게 더 큰 돈을 주고 출발지로 이동했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면서도 그 힘든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지 않던가? 비록 150유로를 날렸지만 로마와 출발지에서 서포터를 해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21일 동안 노숙만 하게 될 줄 알았던 내 도전 첫 날은 아주 따뜻한 숙소에서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대망의 지로 디 이탈리아의 시작]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 이윽고 대망의 지로 디 이탈리아가 시작되었다. 스테이지 3까지는 평지위주의 구성으로 몸에 큰 무리 없이 32정도의 평속을 유지하며 달렸다. 하지만 스테이지 4부터는 프로필 상과 조금 상이한 산을 올랐고, 3등급 업힐이라 하여 마음놓고 있던 찰나 15km나 되는 구간 내내 오르막길을 오른 분노의 날도 기억난다. 이날 힘들게 달리던 중 누군가 나를 멈춰 세워 돌아보니 스테이지 첫 날 함께 사진을 찍었던 니코(Nico)와 유진(Eugin​​​​)이었다. 그들은 “힘들면 이 차를 타고 가라.”라고 했지만 “아냐 나는 지로 디 이탈리아를 꼭 완주할거야.” 라며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자 차에서 내려 함께 파이팅을 외쳐주던 그들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 파이팅 넘치는 응원을 받아 다시 출발하였고, 강행군은 또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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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세우고 응원까지 해준 니코(Nico)와 유진(Eugin)





스테이지 4, 5를 끝내고 스테이지 6의 출발지인 베네벤토(Benevento)에서 니코(Nico)와 스폰서 친구들과 점심을 함께 먹었다. 그때 니코가 지로 디 이탈리아가 끝날 때까지 돕고싶다는 말을 꺼냈다. 사실 서포터가 생겼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이 낯선 땅에서 나의 ‘진정성’을 함께 공유할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 기적과 같은 일로 느껴져 기뻤다.


그런데 이 기쁨에도 슬픔이 공존하는 것일까. 35kg에 달하는 나의 짐 중에서 10kg을 덜어내고 시작한 스테이지 6에서는 로카라소(Roccaraso)로 향하던 중 우중 라이딩이 지속되었다. 게다가 고글을 착용해 잘 보이지 않던 터널 속에서 요철을 밟고 그만 낙차를 하고 말았다. 그 당시에는 가야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에 그저 페달을 다시 밟기 시작했다. 마침내 피니시 지점에 도착하였고 다행히 낙차한 부분은 허벅지 쪽에 찰과상 빼고는 그리 크게 다치지 않았다. 다음 출발지 술모나(Sulmona)까지는 히치하이킹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연이어 스테이지 7과 8에서 우중 라이딩은 지속되었다. 이 중 스테이지 7의 첫 산에서 또 한 번의 아찔한 낙차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비가 와 고글을 벗으려 한 손을 놓고 라이딩을 하던 중 중심을 잃어 옆으로 넘어졌고, 그 때 당시에는 큰 탈이 없으리라는 판단 하에 다시금 출발했다. 그리고 무사히 도착지에 도착하였고 그 때가 되어서야 확인해봤는데 가민 rpm 측정기 행방불명, 크랭크와 카본 휠 찍힘과 상처 그리고 가민 케이블이 고장나 있었다. 때문에 기록 측정이 불가능하게 되었고, 자전거 휠이 크랙일지도 모르지만 평온한 감정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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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민 rpm 측정기 행방불명, 크랭크와 카본 휠 찍힘과 상처 그리고 가민 케이블의 고장








그렇게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금 출발을 하게 된다. 어느새 스테이지 9에 접어들었고 TT코스라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40km이니 한 시간 조금 더 걸려서 도착하겠지.’ 라며.


 


그래서 아레초(Arezzo)에서 선수들의 경기도 보고, 친구들과 같이 맥주 한 잔을 즐기며 처음 만난 사람들 또는 다시 보는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공유하고 5시가 되어서나 출발했다. 작년 투르 드 프랑스 도전과는 달리 서포트카가 없어서 불편함은 이미 적응이 된 줄 알았지만, 40km가 100km가 되니 생각보다 불편함이 크게 다가왔다. 게다가 빨리 도착할 줄 알았던 스테이지 9는 산으로 구성되어 굉장히 멀게 느껴졌다. 그리고 또 비가 내리게 되고 몸과 마음까지 젖고 답답해졌다.  ‘내가 이렇게까지 고생을 해야 하나’ 라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아무 답답한 마음을 넘어 아무 생각 없이 도착지로 향하던 중 뒤에서 또 어떤 이가 저를 멈춰 세웠다. 바로 지로 디 이탈리아의 라디오 기자였다. 뉴스에서 나를 본 적이 있다며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나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때 아닌 때에 라디오 인터뷰를 가졌다. 또한 도착지에 도착하니 지로 디 이탈리아 스토리사(Giro d italia storie)에서 인터뷰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 한 번 때 아닌 곳에서 때 아닌 인터뷰를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인터뷰 기회를 가져 좋았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궁금했기에 그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아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이탈리아 최대의 스포츠 전문지인 ‘라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La Gazzettadello Sport)에 내 이야기가 소개되었다고 답했다. 아마 카탄자로(Catanzaro)에서 헤드쿼터 기자와 인터뷰 한 것이 신문에 난 것 같았다. 나의 이야기를 알릴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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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타 델로 스포르트(La Gazzettadello Sport)와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지난 10일과 달리 앞으로는]
지난 10일 동안은 본능에만 충실했다. 그날그날마다 밤늦기 전에 도착해야한다는 압박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동안은 두 가지 규칙을 정해놓고 도전에 임하기로 했다. 첫째, 자전거만 타려고 이곳에 온 것은 아니다. 둘째 숫자에 연연하지 말자. 숫자에 연연하다보면 사람이 조급해진다.



이런 룰을 정하며 남은 11일 동안 또 한 번의 새로운 지로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마음 때문인지 스테이지 9를 끝내고 기다리고 있던 니코와 유진, 마티나 형 그리고 누나, 동생들과 정말 많이 웃었다. 또한 라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La Gazzettadello Sport)에서 나를 다시 찾아 VIP들만 입장이 가능한 피니시 지점 패스포​​​​트를 건네주었다. 덕분에 근사한 곳에서 경기를 관람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기쁜 소식은 미스 이탈리아 출신의 아주 예쁜 지원군이 생겼다. 그렇게 순간순간을 자전거만 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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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들만 입장이 가능한 피니시 지점 패스포트를 건네 받았다





스테이지 10 시작 전에는 니코가 호텔에서 무료로 잘 수 있게 도와주었고, 스테이지 11에서는 안장이 풀려버렸지만 5분도 안되어 라이더를 만나 안장을 고정시키고 가는가 하면, 스테이지 12에서는 이틀 동안 지로를 라이딩하러 온 그룹을 만나 아무 짐 없이, 아무 조건 없이 편하게 라이딩을 즐기게 되었다. 또한 스테이지 12가 끝난 후, 다음 출발지인 팔마노바(Palmanova)까지 거리가 60km나 되었지만 한 번에 히치하이킹을 해줄 사람을 구하게 되었고, 더불어 5유로(6천원)로 4성급 호텔에 숙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돌로미티 산맥]


다음 날 시작되는 돌로미티(Dolomiti) 산맥은 정말 힘들었다. 스테이지 6부터 충전이 되지 않았던 가민이 소량의 배터리로 다행히 켜져 있어 경사도를 확인해봤더니 경사도가 14%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러한 업힐은 12km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그래도 서포트카가 있으니 괜찮겠지’ 라는 마음으로 달렸고, 결국 7개의 산을 오르게 되었다. 그 다음날 자신들은 모든 3일의 모든 일정이 종료되었다며 짐을 정리하여 자신들의 집인 네덜란드로 이동했다. 나는 그들의 응원을 받고 스테이지 14의 출발지로 향했다.


스테이지 13 도착지에서 스테이지 14 출발지까지의 거리는 약 100km 이상이었다. 히치하이킹으로 무리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 ‘무조건 할 수 있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3번의 히치하이킹 끝에 다음날 출발 지점 부근인 벨루노(Belluno)로 이동하게 되었다.



나는 히치하이킹을 도와 준 운전자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는 동시에 패스트 푸드점인 맥도날드(McDonald)를 찾았다. 왜냐하면 유일하게 와이파이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가장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우중 라이딩에 온 몸이 흠뻑 젖은 상태로 허겁지겁 버거를 먹는 것이 안쓰러워보였을까? 이곳에서 또 한 번의 기적이 일어나게 된다. 나를 재워줄 또 한 명의 친구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 날, 이탈리아에 와서 처음 먹게된 쌀은 비록 밥에 소금을 뿌린 것이 다였지만,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는 비싼 밥보다도 맛있었다. 그렇게 그 친구의 집에서 스테이지 14를 준비했고, 이제 지옥의 스테이지라 불리우는 본격적인 돌로미티(Dolomiti)산맥과 알프스(Alps) 산맥을 앞두고 있었다.



아마 스테이지 14부터는 정말 하루하루를 정신력으로 버텼던 것 같다. 하루에 5,300m의 고도를 오른 날도 있었고, 상승고도 2,000m가 넘고 정상온도가 영하 3도를 가리키고 있는데도 반팔을 입고 꿋꿋하게 오른 날도 있었다. 그 많은 오르막 길 속에서도 힘든 것을 보여주려 인위적으로 사진을 찍은 적은 있었지만 나도 모르게 내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흘렀다.





힘든 산들을 많이 넘어서 그런지 나에게 달디 달은 보상이 주어졌다. 스테이지 14 에서는 스폰서 친구들의 도움에 호텔을 무료로 이용하게 되었고, 스테이지 15 알페 수이시(Alpe di suisi)에서는 유로 스포츠(Eurosports)에서 5성급 호텔을 내어주며, 생방송 인터뷰 요청이 왔지만 거절을 한 적도 있었다. 이 거절은 지금 생각하면 미쳤다는 생각도 든다. 또한 이탈리아 국영방송사인 라이(Rai)와 스테이지 20 도착지에서 생방송 인터뷰를 할 수 있게 해 준 든든한 지원군 마우로(Mauro)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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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지 15 알페 수이시(Alpe di suisi)에서





그렇게 스테이지 18까지 끝마치자 의형제, 거의 의가족을 맺었던 혼다 친구들에게서 ‘어디서 잘 것이냐’ 라는 연락이 왔고. “맥도날드에서 노숙할거야.”라고 하자 “기다려 데리러 갈게”라고 했지만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정말 데리러 온 이 형과 누나 동생에 눈물 나도록 울며 웃었던 적이 있다. 그 날 야심한 밤, 나의 무사완주를 기원하며 함께 건배했다. 그런 친구들이 너무 고마웠고, 그 고마운 마음으로 최고의 잠자리에서 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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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정말 데리러 온 친구들, 눈물나게 고마웠다













[마지막 스테이지와 피니시, 그리고 나의 결론]


프랑스로 진입하는 스테이지 19와 20은 정말로 힘들고 추웠다. 결승점인 토리노(Torino)를 가기 위한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정말 얼마 남지 않은 거리와 나의 체력과의 피말리는 싸움은 대단했다. 기본 산의 고도는 2,200m이상 이었고, 스테이지 19의 업힐은 170km중 100km가 3~17%의 업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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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경계, 춥고 너무나도 힘들었다





13년 히말라야, 15년 투르 드 프랑스를 다녀와 인터뷰를 가지든, 강연을 다니든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오르막 길을 오를 때 얼마나 힘든가요?”, “오르막길에는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특히 “왜 도대체 그런 것을 하시나요?” 라는 말이었다. 사실 멋지게 보이고 싶어 멋진 말을 많이 꾸민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느끼고 싶었다. 어떤 생각으로 오르고, 얼마나 힘든지 도대체 왜 하는지.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멋지고 대단한 것들도 좋지만 그것이 나 자신이 아니라면 그 속마음은 과연 어떨까. 그래서 세상에 진심으로 소리쳤고, ‘진정성’있는 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이 오르막길에서, 지로 디 이탈리아의 길 위에서 나는 확신과 결론을 내렸고. 토리노(Torino)에서 나를 반기러 온 여자친구와 친구들의 환대 속에 나의 도전은 막을 내렸다.



혹시나 누군가가 묻는다면 말하고 싶다. 지난 26년 혹은 30년이든 40년이든 우리가 살아온 삶은 너무나도 다르다. 내가 한 것은 결코 대단하지 않고 나의 길을 걸은 것뿐이다. 그 다름 속에서 각자 삶의 이유도 다르고, 크기도 다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고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 시작의 끈만 놓지 않고 있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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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신지휴 / 사진 신지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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